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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영화 윤희에게 줄거리 해석 감상후기

맛이멜로 2025. 2. 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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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에게, 사랑의 편지

영화 <윤희에게>는 서신 형식으로 진행되며, 오타루에 거주하는 수의사 쥰(나카무라 요코)의 고모 마사코(키노 하나)가 조카가 보내지 못한 편지를 몰래 우체통에 넣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편지는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모는 'Yun Hee'라는 수신자의 이름을 쥰을 대신해 불러주고, 이 편지는 윤희(김희애)의 딸 새봄(김소혜)에 의해 처음 발견된다. 쥰과 윤희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현실 속에 갇혀 있다. 마사코와 새봄은 눈이 내리는 오타루의 겨울 속에서 20년 이상 만나지 못한 쥰과 윤희가 재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간다.

눈 내리는 오타루라는 영화의 배경은 고독한 안부를 묻는 애틋한 감정을 자아낸다. 부치지 못한 편지와 필름 사진, 상실의 감각은 <러브 레터>(이와이 슌지, 1999)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잃어버린 과거를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고착된 기억과 혼란을 일으킨다. <윤희에게>는 오래전에 놓아주어야 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으며, 쥰과 윤희는 서로의 편지에 응답하면서 과거에 머물지 않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편지의 발송 지연, 느린 촬영 속도, 아날로그적인 번역 과정 등은 단순히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쥰과 윤희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사이였지만 가족의 폭력으로 인해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다. 윤희는 가족에게 쥰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후 정신병원에 갇히고, 이른 나이에 오빠 친구와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윤희는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 진학이 좌절되자 엄마에게 카메라를 선물받는다. 새봄은 엄마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엄마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는 결국 새봄에게서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러한 시간의 시차는 한국의 퀴어한 시간성을 드러낸다.

윤희는 자신의 욕망을 부인당한 후 고립되어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든다. 그는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쥰은 윤희에게 쓴 편지를 반복적으로 부치지 못한다. 윤희는 자신의 세계에 누구도 들이지 않으려는 고집을 드러내며, 쥰은 성적 정체성과 혼혈이라는 국적 정체성을 숨기고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들의 시간은 정체된 상태에서 맴돈다. 부인당한 욕망과 정체성을 지닌 윤희의 삶은 폭력적인 가족에 의해 통제당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지와 포용이 필요하다. 윤희와 쥰은 가부장적 남성들로 인해 헤어졌지만, 새봄과 마사코라는 새로운 가족의 도움으로 재회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윤희에게>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로 알려진 <질투>(한형모, 1960)의 늦은 응답으로 여겨진다. <질투>는 동성애자인 재순(문정숙)이 의붓 여동생 금이(전계현)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결국 재순의 욕망은 부정당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윤희에게>에서 윤희는 재순처럼 정신병원에 갇히지만, 살아남아 쥰과 재회한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최근의 영화들, <연애소설>(이한, 2002), <주홍글씨>(변혁, 2004), <끝과 시작>(민규동, 2009) 등에서 여성 동성애 로맨스는 이성애 로맨스와 결합되어 과거의 순수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윤희에게>는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영화의 형식인 편지는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윤희에게', '쥰에게'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임대형 감독은 한 시상식에서 이 영화를 분명히 '퀴어영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을 가정하는 것 또한 문제지만, 이름 부르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 조건에서 성소수자라는 이름을 빼려는 시도처럼 말이다. 이제는 늦었지만 이름을 부르고 응답해야 한다. 새로운 퀴어 시간성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영화사에서 퀴어영화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수많은 조건이 필요하며, 차별금지법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실과 영화는 거리감이 있지만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현실, 환상, 꿈을 형상화할 수 있다. 쥰과 윤희가 각자의 꿈 속에서 만나왔던 것처럼.

결국 <윤희에게>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개인의 욕망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환경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설키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상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퀴어 정체성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관객들은 윤희와 쥰의 이야기를 통해 잊혀진 사랑의 순간들을 되새기고, 현대 사회에서의 연애와 정체성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재회의 서사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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